늙음, 나이든 노인, 죽음에 대해 이리 깊이 있게 논하는 것을 처음 보는 것 같다. 예전에 강신주 철학자가 하는 강의를 얼핏 본적이 있어서, 그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날카로운 비판자라고.




강신주 그는 대한민국의 철학자, 강연자, 저술가이다. 그는 지난주 <어쩌다 어른>에서 인정욕구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소리쳤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싫어도 해야하는 일들을 억지로 하지 말자고 했다. 100% 맞는 소리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란? 

1. 멀 잘 모르고, 멀 잘 못하고, 누군가에게 의지만 해야하는 그런 나이든 사람. 

2. 자식에게 폐만 끼치는 사람. 

3. 배울려고 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잔소리만 많은 사람.


이번 강연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사회를 비판하고 사람들을 조롱할까 그런 생각으로 보게된 어쩌다 어른 이라는 프로. 

주제는 행복이 무엇인가 였다. 자연스레 연결지어져 나오는 얘기들, 늙음. 나이듦.






노인은 지혜의 상징이었다, 불과 300년전에는갓 태어난 신생아와 노인이 있는데, 둘 중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300년전에는 갓 태어난 신생아를, 현대에서는 노인을 선택한다.

왜 옛날에는 노인이 지혜의 상징으로 불렸을까. 그건 간단하다. 시련이 닥치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알기 때문. 오랜 시간 동안 겪은 삶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그러면 반대로 현대에서는 왜? 그건 마케팅 때문. 나이든 사람들은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 그로 인해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에서는 구매력을 갖춘 젊은이들을 선호하게 되면서, 이 사회의 모든 초점은 구매력을 가진 사람들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노인들은 그저 짐이 되어버린 사회.




나도 나이가 들어, 젊은 친구들에게 부탁한다면??




나도 회사에서 가끔 겪는 일이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나보다 연배가 많이 높아서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일이 생길 때면 나에게 부탁하거나 다른 동료들에게 부탁한다. 유독 참 시키는 일들이 많다. 그럴때마다 나는 짜증이 났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는 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나이가 들어 그분의 나이가 되어, 젊은사람들처럼 전자기기를 잘 못 다루게 되면 주위 동료들에게 부탁을 하겠지. 그런데 그 동료들이 지금의 나처럼 짜증을 낸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어쩌다 어른의 강신주는 바로 이런 얘기를 한 것이다. 늙음, 노인, 나이듦을 부끄러워하고 부정하는 것은 현 사회가 만들어낸 잘못된 사상이라고. 절대 그렇지 않다고.




<젊음이 사라진 외모에서 의료, 다이어트, 귀금속으로 대신하려 한다.>


안티에이징이 바로 그 대표다. 여자들은 매일 아침 화장을 하기 위해 거울을 본다. 20대에도 30대에도 나이가 들어 60대가 되어도. 그런데, 나이가 들면 나이든 얼굴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20대의 얼굴을 찾는다. 사실 말이 안되는 것이다. 60대의 얼굴이 거울을 보면서 왜 20대의 팽팽한 얼굴이 아닌것이야 라고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알면서도 안되는 게 여자맘이겠지만.)





노인의 진가는 바로 시련 속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 부모님, 평소에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이거 어떻게 해야하느냐, 컴퓨터는 어찌 써야 하느냐 여러가지 물어보시고 귀찮게 하시지만, 우리가 힘든 인생의 역경에 부닥치면, 나를 귀찮게 했던 부모님이 든든한 존재로 내 옆을 지켜주실 것이다. 

늙음이란, 지혜의 상징이라는 말을 그때서야 비로소 느끼게 될 것이다. 




자연스레 강신주는 이제 죽음에 대해 얘기한다. 죽음은 세종류가 있다.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들의 죽음.

그들의 죽음은 말할것도 없다. 그저 남의 죽음이기 때문에 그닥 슬프지 않다. 나의 죽음은 내가 죽는 것이라 아무것도 와닿지 않을 것이다. 모르니까.

처음 맞이하는 죽음이 어색하고 낯설뿐. 그러나 너의 죽음은 다르다. 여기서 너는 그냥 너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너가 없으면 내가 힘들어지는 그런 존재.

즉 사랑의 대상이다. 이 사랑의 대상은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부모, 자식, 남편, 아내가 될 수 있다. 그건 너가 떠나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만약 떠나기 전에 미리 알고 잘해준다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겠지





우리는 일반적으로 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부모가 죽었을 때 비로소 부모에 대한 사랑과 죄책감으로 울게 되고 반성하게 된다. 미리 알았더라면, 이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이리 생각하면 또 살짝 편해진다. 어차피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지게 될 것이니, 누가 죽든 먼저 지게 된 것이라 생각하면 좀 낫지 않을까.

어제 폈던 꽃이 오늘 지는 것이고, 너가 오늘 죽는 것이며, 내가 좀더 남아있다가 죽는 것이니.

 

이 강연의 끝은 마지막에 질문을 던진다. 일주일 밖에 없는 시한부 인생이라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할까.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낸다? 여행을 간다? 등등 많은 생각들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순간은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부랴부랴 하겠다고 설칠텐데지금은??? 아직 죽을 날이 멀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게임이나 하거나 TV나 보거나 하는 걸까?

그러면 나는 지금 무얼 해야하는 걸까?





블로그 이미지

미네르바98

안드로이드와 영화 리뷰, 생활정보에 관한 내용을 기재합니다.

,